<네크로노미콘 Necronomicon> 은 러브크래프트에 의해 창조된 허구의 책이다. 이처럼 간단한 설명으로 충분할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적지않은 사람들이 반세기 동안 네크로노미콘을 연구하고, 30년 전쯤부터 네크로노미콘이라는 제목으로 책과 관련서들이 출간돼왔다. 그런데도 모든 사람들을 납득시킬만큼 명쾌하고 충분한 설명이 어렵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서 네크로노미콘의 정체와 역할을 연구하는 사람들(독자로서의 관심과 학문적인 목적을 포함해서)은 정작 이 매력적이고 강력한 금서(琴書)에 대한 언급이 단편적이고 때론 그마저 상반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에 어려움을 느낀다. 또 한편에서는 네크로노미콘을 실존하는 책이라며 출처가 불분명한 원전들을 말하고, 이중에서 네크로노미콘으로 위장된 책들이 출간되기도 한다. 어떤 식으로든 네크로노미콘의 원전을 구해 오래 전부터 마법서로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토론과 실천은 매우 진지하다.
←H.R
기거의 작품집러브크래프트가 국내에 아직 생소한 편이지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네크로노미콘과 관련, 좋은 자료들이 있다. 일단 몇 개 사이트만 소개하겠다.
1. 워터가이드 : 대표적인 네크로노미콘 위작들의 소개와 간단한 내용
2. cafenoir : 네크로노미콘 실존 여부의 문답 (꼼꼼히 검색한 것이 아니므로 혹시 다른 사이트가 있으면 알려주시길.)
3. 해외 사이트로는 댄 클로어(Dan Clore)의 네크로노미콘 사이트가 충실하며, 나도 이 글을 쓰면서 많이 참고했다. 가급적 국내에 소개된 사이트와 중복되지 않게 내용을 작성할 생각이니, 각 사이트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또 한 가지, 이 글의 기본적인 입장은 "네크로노미콘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허구의 책" 임을 밝혀둔다. 읽다보면 실제처럼 느껴지는 것이 네크로노미콘의 특징이자, 네크로노미콘이 실존의 책이라고 믿는 분들에겐 내가 오히려 편협하게 느껴질 것이므로 입장이란 말을 사용했다. 네크로노미콘이 실존하는 책이라는 가능성이나 의견을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내 의견이 바뀔 여지는 없을 것 같다.
* 글 싣는 순서
첫글 : 네크로노미콘 전반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를 중심으로 작가 자신이 말하는 네크로노미콘의 실체를 알아보고, 다양한 위작과의 관련성을 살핀다.
두번째 글 : 네크로노미콘의 위작
네크로노미콘의 위작과 관련, 가장 접근하기 쉽고 잘 쓰여진 댄 클로어의 글을 번역 정리한다.
세번째 글 :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러브크래프트를 포함, 네크로노미콘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포함해서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이는 대니얼 함즈의 글을 번역 정리한다.
네번째 글 : 네크로노미콘의 내용
역시 대니얼 함즈가 그동안의 네크로노미콘 연구와 문화 전반에서 재생산된 네크로노미콘에 무슨 내용이 담겨 있는지 재구성한 글을 번역 정리한다.
위에서 번역 정리할 계획인 두 번째에서 네번 째글들은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세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위작과 재생산된 결과물까지 포함한다. 모두 네크로노미콘이 러브크래프트의 문학적 허구물이라는 기본 입장을 견지하되, 자칫 오해를 불러올만한 분야까지 다루면서도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어 유용할 것이다.
Chapter 1. 네크로노미콘 전반
전설의 탄생 :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The History of the Necronomicon> 를 중심으로
러브크래프트가 어디서 네크로노미콘을 착안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물론, 유년 시절부터 18세기 고전과 <그리스 로마 신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과학 에세이까지 광범위한 독서를 즐기고 지적 탐구욕이 왕성했던 점을 고려하면 작가의 관심 분야와 독서에서 그 원천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호손(특히 일기 형식의 Notebook)과 포의 자취도 포함된다.
러브크래프트가 처음으로 네크로노미콘을 언급한 작품은 "사냥개 The Hound"(1922)인 반면, 이 책의 저자 압둘 알하즈레드(Abdul Al Hazred)는 "이름없는 도시 The Nameless City"(1921)에서 언급됐다. 이후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에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자주 등장함으로서 그리고 <위어드 테일즈>의 동료 작가들에게 지속적으로 차용됨으로서 네크로노미콘은 또 하나의 전설이자 상상력의 근원으로 자리잡는다.
크툴루 신화처럼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이 가져올 엄청난 파급력을 예상치 못했다. 그래서 그 출발은 거창하지 않았다. 자신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네크로노미콘의 전거 내지 기준을 마련해둘 필요성 때문에 러브크래프트는 1927년 <네크로노미콘의 역사>라는 소품에 가까운 글을 집필한다. 이론과 창작을 결합하고, 네크로노미콘으로 대변되는 금서 전략의 효과와 완성도를 원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당면한 필요였다.
원고지 10장 안팎의 짧은 분량인 <네크로노미콘의 역사>(Gaya님의 사이트 Data 메뉴 참고)에서 러브크래프트는 알 아지프(Al Azif)라는 원제로 아랍의 미친 시인, 압둘 알하즈레드에 의해 다마스커스에서 집필된 책 한권을 네크로노미콘 역사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그 내용을 시간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네크로노미콘 연대기
서기 700년경 : 미친 시인으로 알려진 압둘 알하즈레드가 다마스커스에서 <알 아지프>를 집필한다. 압둘 알하즈레드는 서기 738년 보이지 않는 괴물에 의해 처참하게 잡아먹혔다거나 실종됐다는 풍문이 나돈다.
당대 철학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반향을 일으키던 <알 아지프>는 테오도루스 필레타스에 의해 그리스어로 번역된다. 이때 책 제목이 <네크로노미콘>으로 바뀐다. 이후 100년 동안 일단의 실험가들이 네크로노미콘을 읽고 끔찍한 시도를 하자, 미카엘 주교에 의해 불태워진다.
서기 1228년 : 은밀한 속삭임으로만 떠돌던 네크로노미콘은 올라우스 워미우스에 의해 중세말 라틴어로 번역된다. 이 라틴어 번역본은 블랙
레터(black letter) 서체로 15세기에 한번(독일어), 17세기에 한번(스페인어로 추정) 출간되지만, 아무런 표식도 없이 도처에 보관된다.13세기-15세기, 유럽에서 쓰였던 블랙 레터 서체→
서기 1232년 : 라틴어 번역본이 집필된 이후, 라틴어와 그리스어 판본이 모두 관심을 불러모으자, 교황 그레고리 4세는 두 가지 판본에 금서령을 내린다. 한편, 아랍어 원본은 워미우스가 어렸을 무렵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워미우스의 라틴어판 서문에 의하면)
서기 1500-1692년 : 서기 1500년에서 1550년 사이 그리스어 번역본이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지만, 1692년 마지막 소장자로 알려진 세일럼 주민의 저택이 불탐으로써 그리스어 번역본도 사라진다. 한편 존 디(John Dee) 박사의 영어 번역본은 한번도 출간된 일이 없으며, 파본 형태로만 존재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네크로노미콘의 원제 <알 아지프 Al Azif>를 곤충들이 한밤에 내는 소리라는 뜻으로 아랍인들이 악마의 울부짖을 표현할 때 쓰는 말이라고 했다. S.T. 조쉬에 따르면, '알 아지프'
라는 말은 윌리엄 벡퍼드(William Beckford)의 소설 <바텍 Vathek>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한다.
- 킹 인 옐로우 (The 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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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디 (John Dee, 네크로노미콘 영문 번역자) : 1527년 런던 출생으로 연금술과 마법을 연구함